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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 복 궁
경복궁은 대한민국 서울 세종로에 있는 조선왕조의 법궁(정궁)이다.
1395년(태조 4년)에 창건하였다. '경복궁'은 시경에 나오는 말로 왕과 그 자손, 온 백성들이 태평성대의 큰 복을 누리기를 축원한다는 의미이다. 풍수지리적으로도 백악산을 뒤로 하고 좌우에는 낙산과 인왕산으로 둘러 싸여 있어 길지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1592년,임진왜란으로 인해 불탄 이후 그 임무를 창덕궁에 넘겨 주었다가 1865년(고종 2년)에 흥성대원군의 명으로 중건되었다.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건물을 짓는 등 많은 전각들이 훼손되었으나, 1990년대부터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는 등 복원사업을 벌인 덕분에 복원 작업은 현재 부분 완료된 상태다. 근정전, 경회루, 향원정, 아미산 굴뚝 등은 훼손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 면적은 432,703m²이며, 동서 500m, 남북 700m 규모로 남아 있다.
1392년 조선 왕조를 개창한 태조는 즉위 3년째인 1394년에 신도 궁궐조성도감을 열아 1394(태조3년) 한양에 천도하자 먼저 종묘 및 사직의 건설에 착수한 다음, 청성백 심덕부에게 명하여 궁궐을 짓게 했다. 처음 새 궁궐을 지으려고 잡은 터는 고려 때의 나경 이궁 자리였으나 너무 협소하여, 거기서 남쪽으로 조금 옮겨 지금의 경복궁 자리에 건물을 배치하고 전각을 세웠다. 태조실록 6권 3년 9월 9일 새 궁궐 경복궁은 태조 4년(1395년) 8월 경기좌도의 인부 4,500명, 경기우도 인부 5,000명, 충청도 인부 5,500명을 징용하면서 시작되어, 같은 해 9월 29일에 1차로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 때는 궁궐 내부 중심부만 이루어졌고, 궁궐을 감싸는 궁성이나 궁궐 앞에 세워지는 의정부나 육조 등의 관청은 몇 해 뒤어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 해인 1395년 음력 10월 태조는 입궐하면서 정도전에게 새 궁궐과 주요 전각의 명칭을 지어 올리게 하였는데, 이때 경복궁의 명칭을 비롯하여 강녕전, 연생전, 경성전, 사정전, 근정전, 근정문, 정문(현재 광화문) 등 주요 건물의 명칭이 지어졌다. 정도전은 《시경》〈주아〉에 나오는 "기취이주 기포이덕 군자만년 개이경복"에서 2자를 따서 "경복궁"이라고 지었다. 높이 20자 1치, 둘레 1813보의 담을 쌓고 남쪽에는 정문인 광화문, 북에는 신무문, 동에는 건춘문, 서에는 영추문을 두었다. 조하를 받는 정전인 근정전의 주위에는 근정문(남문)을 비롯한 4문이 있었고, 그 북쪽 사정전은 편전이며, 강녕전·교태전 등의 침전, 그 밖에 여러 전각이 있었다. 이때 건립된 전각은 총 390여칸에 이르렀는데, 테조실록에 새 궁궐의 규모, 배치 및 각 건물의 기능이 상세히 기술 되어 있다. 실록 내용을 통해 창건 당시 경복궁의 기본 배치를 짐작하자면, 경복궁은 남북축 선상에서 남쪽에서 북쪽으로 오문, 정전, 보평청, 연침의 순서로 남북 직선축을 따라 중심 전각이 나란히 놓이고, 중심 전각 주변에는 행각이 좌우 대칭으로 네모반듯하게 감쌌으리라 추정되낟. 그리고 왕이 신하들과 정무를 보는 외전은 궁궐 앞쪽에, 내전은 뒤쪽에 배치하는데, 내전의 각 전각과 정전은 천랑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궁궐의 외곽 울타리인 궁설을 건설한 것은 궁궐을 완성한 지 3년 뒤인 태조 7년(1398년)의 일이었는데, 이 해 1월에 민정을 징발하여 궁성 공서에 들어갔다. 공사는 겨울 동안에 대체적인 궁성 성벽을 축조한 것으로 보이며, 다시 그 해 7월이 경기 좌도와 충청도 군사 3,700명을 동원하여 궁설을 수축하였다. 궁성에는 정문인 남문 외에 동문과 서문이 갖추어져 있었는데, 북쪽은 궁성과 문을 갖추어져 있었는데, 북쪽은 궁성과 문을 갖추지 못하고 목책으로 둘러쳐 있다가 세종대에 와서야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궁궐이 창건되었을 때 실록 기록 말미에 "(뒤에) 문 남쪽 좌우에는 의정부, 삼군부, 육조, 사헌부 등의 각사 공청이 벌여 있었다"고 나와 있어서, 궁성 문 남쪽에 의정부나 육조 등 여러 관청이 좌우로 조성된 것은 궁성과 궁문이 조선된 태조 7년때로 충정된다.
경복궁은 태종, 세종을 거치면서 계속해서 전각이 더 지어지고 보완되었는데, 태종 11년(1411년)에는 명당수를 파서 이를 홍례문 앞 금천으로 끌어들여 궁궐의 상징성과 풍수적인 형국을 보완하였는가 하면, 경회루를 지어 외국 사신과 조정 관원들의 연회 장소로 이용케 하였다. 경복궁이 조선 왕조의 법궁다운 면모를 갖춘 것은 세종 때였는데, 1426(세종 8년) 왕명을 받은 집현전에서 경복궁의 각 문과 다리의 이름을 지어올렸으니 광화문, 홍례문(현재 흥례문), 일화문, 월화문, 건춘문, 영추문, 영제교 등이 이때 지어진다. 그리고 1492년 사정전과 경회루의 중수를 시작으로 주요 전각을 새로 짓서나 중수하였다. 그 밖에 간의대 등의 관측시설이 세종 때 완비되었다.
1553년 화재
명종 8년(1533년) 9월에는 실화로 강녕전에 큰 불이 나서 사정전, 근정전, 경회루, 함원전, 청연루만을 남긴 채 편전과 침전 구역의 건물이 모두 소실되었으며, 역대로 내려오던 진귀한 보배와 서적, 왕과 왕비의 고명, 의복, 거마 들이 불타버렸다. 불이 난 지 1년도 되지 않은 1554년 봄에 중건 공사를 시작하여 그해 9월에 낙성하였다. 이 때에 동원된 인력이 부역이 2,200명이었고 품팔이꾼이 1,500명이었다고 한다. 명종 때에 건립된 경복궁을 그린 '한양궁궐도병'이라는 그림이 있었는데, 그림은 임진왜란 당시에 소실되었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1592년 선조가 피란할 때에 난민이 발생하였고, 노비문서와 노략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경복궁·창덕궁·창경궁의 궁궐들을 난민들이 불태웠다고 전해진다. 현재, 이것이 거짓일 수도 있다는 논란이 나오고 있다. 류성룡의 《서애집》에는 "왕실과 관료들이 일찌감치 피난을 떠나고 남은 빈 궁궐을, 왜적이 수도 한성을 입성하기도 전에, 백상들이 궁중으로 침입하여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보물도 약탈했다."라는 기록을 볼 수가 있으나 이는 목격담이 아니라 전해 들은 것으로, 유성룡이 불탄 궁궐을 직접 목격한 것은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군이 한성을 탈환한 뒤인 계사년(1593년) 4월 20일이었는데, 이때 종묘는 불타고 세 궁궐은 모두 무너진 후였다. 그러나 왜군이 한성에 입성했을 때인 1592년 5월에 기록된 종군승 제다쿠의 《조선일기》에는 왜군이 한성에 입성한 직후 경복궁을 직접 답사한 내용이 상세하게 적혀 있어서 그때까지 경복궁의 전각들이 남아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기록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 "북산 아래 남향하여 자궁(경복궁)이 있는데 돌을 깎아서 사방 벽을 둘렀다. 다섯 발자국마다 누가 있고 열 발자국마다 각이 있으며, 행랑을 둘렀는데 처마가 높다. 전각의 이름을 알 수 없다. 붉은 섬돌로 도랑을 냈는데, 그 도랑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정면에는 돌다리가 있는데, 연꽃무늬를 새긴 돌난간으로 꾸며져 았다. 교각 좌우에는 돌사자 네 마리가 있어서 다리를 지키고 있다...." 이런 기록들로 임진왜란 당시 경복궁은 왜군과 조·명 연합군의 전투가 거듭되면서 소실되었음을 알 수 있다.
환도 우헤는 월산대군의 옛 집(광해군 3년 이후로 경운궁, 지금 덕수궁 일부)를 임시로 사용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중건
그 후로 273년간 재건하지 못하다가 1865년 4월 26일(고종 2년 음력 4월 2일) 고종의 수렴청정을 하던 신정왕후의 지시로 중건이 시작되어 같은 해 5월 7일(음력 4월 13일) 공역이 시작되어 1868년 6월 말에 공사를 마쳤으며, 7월 2일 국왕과 왕실의 경복궁 이어가 이루어져 정무를 개시하였다. 경복궁의 재건을 주도한 흥선대원군은 권력을 장악하였다. 공사를 마치기까지 당백전을 발행하는 등 7년이 넘게 걸렸는데, 경복궁에는 다른 궁궐과 마찬가지로 승정원, 홍문관 등 기타 여러 관아가 정비되어 있었다.
중건된 경복궁의 많은 건물은 그 뒤 몇 차례 소실되고 복구되기를 반복하였다. 고종 32년(1895년 을미사변), 이듬해 양력 2월에는 고종이 러시아 공관으로 파천하면서 경복궁은 왕궁으로서 운명을 다하게 된다.
복원사업
1990년에 들어서 2030년 완료를 목표로 경복궁 복원사업을 시작하였다. 1915년 조선총독부 미술관으로 건립되어 공진회 이후 박물관으로 사용된 철근콘크리트 건물을 1995년 철거하였으며, 1926년 건립된 조선총독부 청사를 1997년 철거, 1935년 건립된 조선총독부 미술관을 1999년 철거, 일제강점기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 수정전 남측의 한식 건물인 무명각을 1998년 철거했다. 다만 조선총독부 박물관 창고로 건립(1915년)된 부속 건물은 현재 경복궁 관리소로 사용 중이다. 2010년 기준으로, 경복궁 1차 복원정비사업이 완료되어 89동 8987m²(2720평)의 건물이 복원됐다. 일제의 철거를 피해 남아 있던 건물 36동을 포함해 현재 총 125동의 건물이 들어서 고종 당시 경복궁 건물 500여 동의 약 25% 수준에 도달하였다. 2010년 9월 이후 광화문 권역이 완전 개방되었다. 2011년부터 약 20년에 걸쳐 경복궁 전각을 76%까지 복원하는 2차 복원정비사업이 추진 중으로 1차 복원이 중심 건물들로 경복궁의 뼈대를 갖추는 것이었다면, 2차 복원은 임금의 수라간과 궐내각사 등 많은 부속건물을 지어 살을 붙이는 과정이다. 수정전 앞 궐내 각사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2차 복원에는 흥복전 권역이 복원 예정에 있고 전체적인 국장과 동서십자각도 복원 예정에 있다. 그 이후 장기 복원계획은 국립 고궁박물관과 국립 민속박물관 및 관리사무소, 주차장 등 시설의 이전에 맞춰져 진행된다.
1차 복원정비사업
지난 1990년 시작하여 당초 2009년 완료될 예정이었던 1단계 종합정비 사업은 총 1789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강녕전 등 93동 1만743.85m²(3250평)를 복원할 계획이었다. 사업기간을 1년 연장한 2010년 기준으로 1572억원의 예산이 투입되어 89동 8987m²(2720평)의 건물이 복원되었다. 일제의 철거를 피하여 남아 있던 건물 36동을 포함하여 현재 총 125동의 건물이 들어서 고종 당시 500여 동의 25% 정도 수준까지 도달하였다. 사업기간 중 옛 조선총독부 청사와 옛 조선총독부박물관(국립민속박물관), 옛 조선총독부미술관(전통공예전시관) 등을 철거하고 광화문을 이전 복원한 데서 나타나듯 일제의 유산인 네거티브 문화재를 철거하고 조선 정궁의 기본 궁제를 완비하는 것이 1단계 종합정비 사업의 목표였다.
이에 따라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정전과 편전, 침전, 동궁, 빈전 등 경복궁 중심축의 복원이 추진되었다. 구체적으로 참전 권역(1990~1995) 사업을 통하여 강녕전 등 12동의 건물이 복원됐으며 동궁 권역(1994~1999) 사업 당시 자선당 등 18동의 건물이 세워졌다. 또한 흥례문 권역(1996~2001) 사업 당시 흥례문 등 6동의 건물이, 태원전 권역(1997~2005) 사업으로 태원전 등 25동의 건물이 각각 복구되었다. 끝으로 광화문 및 기타 권역(2001~2010) 사업으로 광화문과 건청궁 장안당 등 28동의 건물이 복원되었다.
1단계 (1990년 ~ 1995년 12월) : 침전 권역 복원 (강녕전, 교태전 등 12동 794평 복원)
2단계 (1994년 ~ 1999년) : 동궁 권역 복원 (자선당, 비현각 등 18동 352평 복원)
3단계 (1996년 ~ 2001년) : 흥례문 권역 복원 (흥례문 등 6동 517평 복원)
4단계 (1997년 ~ 2005년) : 태원전 권역 복원 (태원전 등 25동 496평 복원)
5단계 (2001년 ~ 2010년) : 광화문 및 기타 권역 복원 (광화문, 건청궁, 함화당, 집경당 등 32동 1,091평 복원)
광화문 제 모습 찾기 사업 (2006년 ~ 2010년) : 광화문 권역 복원
2차 복원정비사업
문화재청은 2010년 1차 복원 정비 사업이 완료된 후 2011년 부터 2030년까지 20년 계획의 제2차 경복궁 종합 정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계획기간을 6단계로 구분하여 단계별 세부시행계획을 수립 및 추진하며, 총 254동을 복원하고 총 사업비는 약 5,4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중심 전각을 전면 복원하며 상대적으로 복원 의미가 떨어지는 지역으로 판단한 102곳운 기단 및 초석으로 복원 항 계획이다.
사업이 완료되는 2030년 까지 전체 379동으로 원래 규모의 75.8% 수준으로 복원하며, 5단계 선원전 일대 복원에서는 복원지의 대부분인 73동을 기단·초석으로 복원해 미복원한 상태로 둔다. 2013년 5월 중 문화재청은 예산의 효율적 활용이 필요하며, 관람객 동선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를 들어 2010년에 수립된 기존의 계획을 대촉 삭감하는 "경복궁 2차 복원정비계획 조정안" 연구 용역에 착수했다. 권역별 대표 건물만 복원하고 부속 건물은 복구하지 않으며, 국립고궁박물관 철거 계획도 빠지는 것이 주 내용이다. 2015년 소주방 영역(내·외 소주방등 18동)이 복원되었다.
단계별 사업 계획
1단계 궁중생활권역 (소주방 및 흥복전 권역 등, 2011년 ~ 2016년) : 소주방 영역(내·외소주방 등 18동), 흥복전 영역(흥복전, 영훈당, 다경합 등 31동), 자미당·인지당 영역(자미당, 인지당 등 7동) 복원. 약 1,038억 5천만원 소요 추정.
2단계 궁중통치권역 (궐내각사 권역 등, 2013년 ~ 2020년) : 영추문 영역(영추문 및 수문장청 복원), 수정전 영역(수정전 행각 등 14동), 궐내각사 영역(선전관청, 빈청, 정원 등 50동), 경회루 남측 및 서측 담장 복원, 어구 복원 및 주변 정비, 국별장직소 등 9동 기단·초석으로 복원. 약 1,201억 3천만원 소요 추정
3단계 제왕교육권역 (동궁 권역 등, 2019년 ~ 2022년) : 동궁영역(춘방, 계방, 계조당 등 19동), 건춘문영역(수문장청 등 2동), 별감방 등 5동
기단·초석으로 복원, 근정전 및 흥례문 행각 내부 원형 복원. 약 651억 9천만원 소요 추정.
4단계 궁중의례권역 (혼전 권역, 2021년 ~ 2025년) : 문경전 및 회안전 영역(문경전, 회안전 등 29동), 보현당 영역(보현당, 각감청 등 9동), 신무문 영역(수문장청 등 3동, 측간 1동), 회안전 수궁 1동 기단·초석으로 복원. 약 759억 5천만원 소요 추정.
5단계 궁중의례권역 (선원전 권역, 2022년 ~2027년) : 선원전 영역(국립민속박물관 철거, 선원전 등 10동), 만경전 및 만화당 영역(만경전 등 20동), 상궁 및 나인처소 영역(제수합 행각 등 15동), 영보당 등 73동 기단·초석으로 복원. 약 1,163억 7천만원 소요 추정.
6단계 궁중국사권역 (군사관청 및 내사복 권역, 2026년 ~ 2030년) : 오위도총부 영역(오위도총부, 상의원 등 10동), 내사복 영역(내사복 등 13동 복원), 서십자각 영역(서십자각 1동, 궁장복원), 별군직청 등 14동 기단·초석으로 복원, 국립고궁박물관 철거 또는 리모델링. 약 580억 5천만원 소요 추정.
경복복궁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기 위해 야간계장을 시작 된것으로 2010년 11월 9일 처음 야간 개장이 실시되었다.그리고 경복궁은 다른 궁과 달리 화요일에 정기 휴관을 실시한다.